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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문화재지킴이의 날 기념식 '성료'
정읍 내장사 특설무대… 전국 문화재지킴이 1천여명 참가
기사입력: 2019/06/23 [09:45]   브레이크뉴스 전북 서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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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종 기자

 

▲  문화재청이 지난 22일 전북 정읍시 내장산 야외 특설무대에서 개최한 '제1회 문화재지킴이의 날' 기념식이 성황리에 열린 가운데 유진섭 정읍시장이 축사를 통해 "전국 문화재지킴이들의 자긍심을 높이는 동시에 국민에게 민간참여 문화재보호 운동의 중요성을 널리 알릴 수 있기를 바란다"는 당부의 말을 하고 있다.              / 사진제공 = 정읍시청                                                                                                                                                          © 김현종 기자

 

 

 

'제1회 문화재지킴이날' 기념식이 지난 22일 전북 정읍시 내장산 야외 특설무대에서 전국 문화재지킴이 회원 등 약 1,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성황리에 열렸다.

 

이날 행사는 문화재청 김현모 차장과 (사)한국문화재지킴이단체연합회 (이하 ‘한지연’) 조상열 회장 및 유성엽(민주평화당 = 정읍‧고창) 국회의원‧유진섭 정읍시장 등 정‧관계 인사 등이 대거 참석한 가운데 문화재청과 한지연이 공동 주최하고 정읍시가 후원했다.

 

정읍시립농악단의 식전공연을 시작으로 실록 이안(移安)을 재현한 연극 공연과 환영사‧대회사‧축사‧유공자 표창‧기념촬영 등의 순으로 진행됐으며 기념식 이후 실록을 지켜냈던 역사가 담긴 내장사 용굴암을 답사하는 역사탐방 시간이 마련됐다.

 

문화재청과 한지연은 지난해 문화재지킴이의 취지와 활동성과를 널리 알리고 과거 ‘조선왕조실록’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했던 민초들의 역사를 계승하고 공유하기 위해 6월 22일을 ‘문화재지킴이날’로 제정해 기념하고 있다.

 

올해 첫 번째로 열린 기념식은 전주사고의 ‘조선왕조실록’을 이안(移安)해 유일하게 지켜낸 역사적인 장소인 내장산에서 열려 각별한 의미를 담아냈다.

 

유진섭 정읍시장은 축사를 통해 "문화재 지킴이의 선구자는 임진왜란 때 조선왕조실록을 내장산으로 옮겨 안전하게 지켜낸 안의‧손홍록 선생"이라며 행사에 참석한 문화재 지킴이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또 "문화재지킴이 날 기념식을 통해 전국 문화재지킴이들의 자긍심을 높이는 동시에 국민에게 민간참여 문화재보호 운동의 중요성을 널리 알릴 수 있기를 바란다"며 "지역사회의 건강한 문화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문화재지킴이 운동'은 국민의 자발적인 참여로 문화재를 가꾸고 지키기 위해 지난 2005년 4월부터 시작됐다.

 

현재 전국 각 지역에서 84,000여명의 자원봉사자들(개인‧가족‧학교‧비정부기구 등)이 문화재지킴이로 위촉돼 있으며 기업과 공공기관 등 60개 협약기관이 참여하고 있다.

 

문화재지킴이는 ▲ 문화재와 문화재 주변 정화 활동 ▲ 일상관리 ▲ 문화재 관리 사전점검과 순찰 ▲ 문화재 홍보 ▲ 장비 지원 ▲ 기부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한편 '문화재지킴이의 날'인 6월 22일은, 1592년 4월 우리나라를 침략한 왜구가 부산을 함락하고 북상하며 성주와 충주‧서울 춘추관 사고에 보관된 '조선왕조실록'이 20여일 만에 모두 전소되고 전주사고마저 위험에 처한 상황이었다.

 

'실록'과 '어진'의 내장산 이안과 수호과정이 기록돼 전하는 '임계기사'의 수직상체일기에 의하면 안의와 손홍록은 실록과 어진을 내장산으로 옮겨 370일 동안 지켜냈다.

 

이들은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수직을 하게 되는데 안의 혼자 수직한 날이 174일‧손홍록 혼자 수직한 날이 143일이며 둘이 함께 수직한 날이 53일에 이른다.

 

이처럼, 시대를 뛰어 넘어 조선시대의 문화재 지킴이로 활동했던 정읍의 선비 안의와 손홍록은 앞서 호남유학의 비조로 불리던 일재 이항의 문하생들로 이들 문하생들은 실록과 어진이 지켜지던 1년여 동안의 모든 군량을 내장산으로 보냈다.

 

문하생들의 이러한 지원에 따라 안의와 손홍록은 임진년 7월 14일, 실록과 어진을 2차로 은적암으로 옮겨 지키다 이해 9월 18일에는 더 험준한 지형의 비래암(飛來庵)으로 옮겨 1년 여 동안을 지켜냈다.

 

하지만, 이듬해 계사년 왜구가 진주성을 공략하며 호남침략을 시도하자 이듬해 계사년 7월 초 선조는 실록과 어진을 행재소로 이안하라 명했고, 안의와 손홍록은 이해 11일, 왕명에 따라 아산으로 이어지던 실록 피난 길을 정읍의 승병장 희묵대사 등의 호위로 속에 모든 식량과 우마(牛馬)도 자비로 충당해 아산으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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